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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 어때!
 

[파과] -구병모-


이 책은 이미 나의 독서 위시리스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는데 2025년 연말, '낭만독서회'의 마니또게임에서 내 마니또는 '기대'와 '염려'를 안고 이 책을 나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내 안에 숨겨져 있을지 모를 파격, 파괴, 예외적 요소들이 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으며, 내가 구병모 작가의 다른 책을 읽은 적이 있었음을 몰랐으니 염려했을 것이다.
내 비밀 친구는 소설의 주인공과 매우 어울리는, 노을이 찬란하게 물든 항구 사진 엽서에 정성으로 글을 적어 나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나는 항구 사진을 보자마자 이 책을 읽을 장소로 '장생포 지관서가'를 떠올렸다.

구병모 작가와 그녀가 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만연체' 이다. 그런데 만연체가 '파과'를 만났다. 65세 생일을 넘긴 여자의 서사를 다루기에 순간을 포착한 사진 같은 간결체보다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견고하게 맞물려 쌓아 올려진 테트라포드 같은 만연체가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단, 구병모식 만연체.

'그래야만 살아가고 그러지 않고선 일을 할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p210)
나이가 예순다섯쯤 되면, 그 방식이야 각기 다를지라도 그래야만 살 수 있었던 저마다의 과거가 있을 것이다.
열다섯 살 소녀는 그 판자촌에서 세 번째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조각(爪角)'. '손톱'과 '뿔'. 상대를 할퀴고 찌르는 동시에 그녀 자신을 지키는 무기였다.
'물론 그 의미는 꼭 공격적인 데에만 있지 않았는데, 짐승의 발톱과 뿔이란 누군가를 사냥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p49)이었고, '심지어 당장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전차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존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접어두는 시간'(p7)에서 알 수 있듯 그녀의 삶은 내일이 보장되지 않았다.

'집안에 자신 말고도 살아 있는 누군가가 존재해서 그것에게 인사를 하게 될 줄은, 집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또는 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까 봐 초조해질 줄은, 자기 인생에서 그런 날이 다시 올 줄은, 무용을 데려오기 전에는 몰랐다.'(p139)
조각이 투영된 생명체 ‘무용’은 ‘상처 입었음이 역력한 젖은 눈의 녀석’(p21)이다. 그러한 무용을 위해 조각은 항상 창문을 열어둔다.

‘그녀가 심란한 이유는 팔이 붙잡힌 순간 곧바로 소매를 뿌리치려고 했으나 투우의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어서인데, 노력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자신의 신체적 노화가 노력을 추월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초조함이다.’(p44)
투우에게 조각은 이제 힘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조각의 모습은 새로 생긴 마트에 밀려 장사가 안 되는 시장 상인들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누구보다 달고 맛있는 과일을 고르는 노련함과 누구라도 한번 보면 잊어버리지 않는 감각을 여전히 가지고 있음에도 세월과 힘에는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다.

'투우'여서 슬프고, '조각'이어서 슬프다. '강박사'도 슬프고 '무용'도 슬프다. 그러나 조각의 절반이 상실되고도 아직 절반의 조각이 남아 여전히 존재하므로 다행이라 해야겠지. 심지어 절반의 '조각(爪角)'은 '파과(破瓜)' 또는 '파과(破果)'가 아닌 '밤하늘의 불꽃놀이(p341)'이거나 아름다운 '과일 열매'(p341)의 모습으로 마침내 '조각(彫刻)'되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는 깨지고 상하고 뒤틀린 자신의 손톱 위에 얹어 놓은 이 작품이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니며 짧은 시간 빛나다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p342)

조각, 그녀는 오늘도, 내일도, 다녀-올 것이다.

추천 ****(별4개)
    • 비밀친구가 마음도 함께 담아 전해준 더없이 소중한 한 가지가 모두에게 생겼어요~ 감동이 새롭게 일어나네요~ 유달리 빛나는 순간.. 우리 낭만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지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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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월 2번째 낭독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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